※ 본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므로 영화에 대한 감상이 다르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 아템, 카이바 중심의 감상.
오늘까지 정확히 5주 동안, 마치 12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유희왕에 흠뻑 빠져서 지냈다. 연재 20주년을 기념하여 원작의 완결에 대한 후일담으로 새 극장판이 개봉했기 때문이다. 완결 이후 단 한 번도 후속 스토리를 연재하신 적 없는 원작 작가님께서 직접 구상하신 이야기로 영화가 나온다고 하니 이건 어린 시절에 유희왕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였다 (ㅠㅠ)
그랬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자연스럽게 만화책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고, 한국에서 시사회도 두 번이나 갔고, 그 결과는 재입덕. 취향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5주가 흘렀고, 곧 한국에서의 영화 상영도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적어보고 싶었다.
사실 적고 싶은 내용은 정말 많고 뒤죽박죽인데, 일단 이 글에서는 원작에서 라이벌 위치에 있던 카이바가 왜 20주년을 기념하는 극장판의 주인공으로 적합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적어보고 싶었다....ㅎㅎ
1.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유희왕 매니아(aka 유덕)들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작가님은,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소년 시절의 박제'를 생각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한 작품이 끝난 이후에도, 그 캐릭터들은 독자가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나가게 된다.
영원히 소년으로 남을 것 같은 소년만화의 주인공들도ㅡ예를 들어 강백호나 서태웅도ㅡ결국에는 성인이 되고, 만화에서 그려졌던 찬란한 소년 시절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유희왕 완결에서 아템과 작별한 유우기가, 자신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완결의 후일담 격인 이번 영화에서 실제로 유우기와 키즈나 멤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의 진로를 구상하고, 실제로 각자의 꿈을 찾아서 고향을 떠나고, 작별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것을 보는 독자/관객들은 그러한 모습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의 아쉽고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들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현실과 타협하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친구들과도 점차 멀어지고, 그들이 살았던 소년 시절도 결국 과거가 될 뿐이고, 그렇게 소년만화라는 판타지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의 어른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니깐.
그렇지만 이렇게 현실적인 면모를 가능한 축소시켜 배치시킨 것이 이 영화의 큰 특징이자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에 가장 소년만화스럽고 판타지스럽고, 키덜트가 꿈꿀 만한 부분을 스토리 전개의 중심이자 스토리의 목적에 둔 것이 내 재덕통의 가장 큰 이유이자 많은 유덕들이 극장판 회전문을 돌도록 만든 이유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의 후기 중에 "한 번 사는 인생, 덕질은 카이바처럼!"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넓게 보면 같은 뉘앙스이다. 결국 극장판의 내용에 의하면 유희왕의 두 주인공(아템과 카이바)은 영원히 소년으로 살아가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키덜트인 유덕들은 대리만족을 느꼈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내 생각. 이 만화는 영원히 소년만화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더불어서.
+(추가) 최근 몇몇 소년만화의 결혼엔딩, 출산엔딩에 대해 많은 팬들이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부터도 사람들이 소년만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인 면보다 이런 피터팬?스러운 느낌에 가깝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아무튼 캐릭터에 빗대어서 본다면, 이번 영화는 카이바와 유우기가 더블주인공이라고 홍보되어 왔지만, 막상 그 뚜껑을 열어보면 유우기의 비중이 굉장히 적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렇게 현실적인 면을 최소화하고 소년만화스러운 부분을 극대화하고자 하려는 목적으로부터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유우기는 소년이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성인이 되어가는 캐릭터이지만 (심지어 그의 꿈조차도 듀얼리스트나 듀얼에 관한 것이 아니다) 12년 뒤에 만나는 카이바는 여전히 만화책 그대로의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영화가 만들어진 목적도, 작가님이 카이바의 후일담을 쓰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카이바의 경우는 어른이 되는 유우기와는 달리, 정말로 철저하게, 소년의 세계에 박제되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번 영화에서 이렇게 적어도 아템과 카이바만큼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소년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둘은, 카이바의 표현에 의하자면, '육체라는 감옥'을 떠나서 앞으로 계속 명계에 소년으로 머물게 될 거니깐.
이러한 내 해석은 결국 결말의 해석과도 맞물려 있다. 카이바의 생사에 관한 해석.
이에 관해 나는, 작가님은 그의 주인공과 라이벌이 영원히 소년으로 남기 바라셨던걸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지고 생각해왔고, 극장판 시사회를 본지 3주가 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의문에 대한 나의 답은 예스.
사실 인정하게 된 지금도 너무 마음이 쓰라리지만, 결국 카이바의 육신은 화면이 암전됨과 동시에 들리는 '쿵ㅡ' 소리로 표현되듯이, 소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카이바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더라도, 영화의 이러한 완결로 인해 둘은 만화 완결 이후에도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듀얼을 해 나아갈 것이라는 미래가 그려지게 된다.
그런 점이 나에게는 매우 좋았다ㅠㅠ 그냥 원작에서부터도 그랬는데, 이 작가님이 쓰는 스토리는 항상 더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내 취향저격이었고 (원작의 스토리에서 나아가서 원작 설정이나 뒷배경 등에 대해 작가님께서 하시는 인터뷰 한 마디 마디조차 다 너무 내 취향이다ㅡ이 부분 나중에 꼭 정리해야지) 이번에도 그랬다. 가장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은 사람인 아템은 살아돌아오지 못하니깐) 가장 판타지스러운 (차원을 초월해서 명계로 아템을 만나러가는 카이바) 만화.
+(추가) 출처를 잊었는데, 카즈키 센세가 KC의 차기 회장은 모쿠바라고 언급했다고. ㅜㅜ 이거 보고 센세 머릿속에서 카이바 죽음은 확정이구나 생각했다.
+(추가) 어떤 감상들에선 카이바가 KC 사장으로서의 미래를 버리고 명계로 떠난 것을 퇴보라고 지칭하는데,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동의-->이 부분은 새로 정리해서 글을 써야겠다
2. 영원한 주인공 ATM (ㅋㅋ)
극장판 개봉 이후로 작가님께서 새로 시작하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고 지금 적게 될 내용인 2번에 대해서도 확신했다. (주소는 http://www.instagram.com/kazuki_yugioh)
작가님 인스타그램의 프사는 아템. 첫 번째로 올라온 그림도 아템.
심지어 진짜 보는 순간 정말 헉소리가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잘 그려진 아템이다ㅠㅠ
그래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작가님은 자신의 최고 히트작의 주인공을 굉장히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그리고 이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멋있고 강한지를 남들에게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이건 아마 유덕들의 마음과도, 특히 나를 포함해 아템 최애를 외쳤던 사람들의 마음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결국 문제는 아템의 이런 매력적인 면모를 어떻게 아템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표현할까ㅡ인데, 이것 역시 그 누구도 아닌 카이바가 극의 최중심축으로서 움직인 이유가 된다.
작가님에 의하면, 극장판의 카이바는 한 줄로 설명할 때 '아템에게 사로잡힌 카리스마'이다. 또 네이버 한줄평들을 보면 농담 혹은 진담으로 이 영화는 '카이바의 사랑이야기,'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많이 눈에 띄인다. 그만큼 이 영화는 카이바가 아템에게 집착하고 아템을 갈구하는 이야기로 줄거리 요약이 끝난다.
이렇게 극장판에서 카이바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아템만을 향해 있는 것과 동시에, 만화책 본편과는 달리 극장판에서 카이바는 주인공의 라이벌 위치가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이다. 즉,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인 카이바에게 이입하여 영화를 볼 수밖에 없고, 카이바의 시선으로 극을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 만화책을 볼 때는, 예를 들어 아템과 카이바의 태그듀얼을 보면서 자꾸 개인플레이를 하는 카이바로 인해 발암하는 왕님에 이입했던 독자들이 (이런 예시를 들어서 미안 카이바ㅠ 하지만 너의 그런 애새끼 이미지가 매력적이었어) 극장판에서는 아템을 보는 카이바의 시선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카이바에게 아템은 동경과 그리움을 느끼는, 언젠가 꼭 뛰어넘고 싶은 어떤 대단한 존재인 거지. 유우기는 아템을 이미 뛰어넘은 인물이지만, 카이바는 아직까지 그를 뛰어넘지 못한채로 동경하는 마음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극장판 내내 이런 카이바의 입장에 쭉 이입해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그가 찾고 그리던 아템의 강림씬과 명계에서의 대면씬에서 관객들은 같이 감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카이바에게 이입한 만큼, 눈앞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명계의 아템은 정말로 대단한 존재였으니깐.
이렇게 작가님은 아템에게 사로잡힌 카이바를 주인공으로 배치시켜, 관객들이 그에게 이입하도록 함으로써 유희왕의 영원한 주인공인 아템이 굉장히 적은 등장시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아템 사랑이 유우기가 세 번째 듀얼에서 포기하는 듯한 연출의 원인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3. 본편에서 맺음짓지 못했던 떡밥 해결 (-> 관계성 매듭짓기)
이번 극장판은 원작에서 해결하지 못한 떡밥을 회수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샤디와 바쿠라에 관한 내용.
그런데 원작에서 다 풀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내용은 얘네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고, 작가님이 말씀하시듯, 카이바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내용을 완결짓는 것 또한 이 극장판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사실 원작에서 나 역시 그동안 단 하나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카이바가 배틀시티 이후로 아템과 전혀 접점이 없었다는 부분이었다. 카이바가 마치 애니에서처럼 (그의 성격 상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 더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왕의 기억세계로 키즈나 멤버들을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하고 굉장히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이바는 만화책에서 단순히 라이벌 이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우기의 키즈나 멤버들ㅡ죠노우치, 혼다, 안즈 등ㅡ이 아템이 아닌 유우기를 통해 이루어진 관계이고, 유우기의 사람들이라면(이 점은 죠노우치와 유우기즈의 관계로 대변된다. 죠노우치에게도 아템은 소중한 인연이지만, 화염 속에서 유우기가 퍼즐을 재조립하느라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있을 때 죠노우치는 퍼즐을 놓고가라고 소리치면서 아템보다 유우기의 생사를 우선하였고, 마리크에게 조종받던 죠노우치와 듀얼했던 것도 아템이 아닌 유우기였다),
카이바만은 유우기보다는 아템에 의해 이어진 관계이다(이건 이번 극장판에서도 확실히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카이바가 유우기와 듀얼하기 전에는 그를 왕의 그릇으로 부를 뿐이었고, 듀얼 이후 유우기를 긍지높은 듀얼리스트라고 지칭한 이후에도 그와의 듀얼에는 집착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만화책에서 파라오 주변의 전생 인물들을 보면, 카이바의 전생, 블랙매지션의 전생(블랙매지션 카드 또한 유우기가 아닌 아템의 카드로 인식된다)은 존재해도 키즈나 멤버들의 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바와 아템의 관계성에 특별함이 부여되는 것이다. 오로지 카이바만이 3000년 이전부터 주인공인 아템과의 숙명의 인연을 이어왔기 때문에ㅡ 환생을 통해서 그 인연이 재현될 정도로 특별한 관계라고 작중에서는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이바와 그의 전생인 신관 세토는 결국 유희왕 줄거리의 큰 핵심 내용이었던 왕의 기억을 찾는 데에 가장 많이 공헌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세토로 인해서 기억의 석판과 무덤지킴이 일족이 만들어져서 왕의 기억이 언젠가 돌아올 수 있도록 3000년 동안 준비되어 있었고, 카이바는 아템이 기억을 찾기 위해 신의 카드를 모을 수 있는 무대인 배틀시티를 개최하였다. 이시즈가 말하듯이 세토의 환생인 카이바는 기억에 석판에 새겨진 '영혼의 교차'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알카트라즈까지 준비해둔 것이다.
+ 아템이 신의 카드 3장을 얻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힌트를 준 것 역시 카이바였다.
오시리스 전에서는 "무한은 없다"를 알려주고, 라의 특수효과에 대한 대책으로 키 카드였던 데빌스생츄어리를 넘겨준 사람이 바로 카이바. 오벨리스크를 넘겨준 것은 카이바 본인.
그런데 이렇게 아템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끝이 보이지 않는 듀얼의 로드'까지 약속했던 카이바가 결국 완결에서는 아템과 어떠한 작별 인사 하나 없이 그 관계를 끝내게 된다...????? 그 이전까지 작가님에 의해 촘촘히 쌓여올려졌던 카이바의 캐릭터성(애정결핍이라는 설정이라던가)과 아템과의 관계성을 생각해보면 이런 결말은 다소 맥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카이바의 미래에 대해서 제대로 마무리를 지어 주신 것만으로도... 이것만으로도 영화의 존재 의의는 충분하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이번 극장판은 내게 있어서 정말 최고의 후일담이었다.
더 바랄 것이 없다. 감사합니다 작가님ㅠㅠ
+(추가)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썼지만 여전히 아템의 진짜 기억은 궁금하다......
이 부분이 원작에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도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8ㅅ8 25주년 극장판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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